_ 무어라 말 할 수 있을까. 이제와서 무엇을 말한다 한들, 바뀌는 것도 없을 터인데. 그저 눈 앞에 닥친 혈실을 응시하는 것 외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차가운 몸을 끌어안고 나는 기어코 울고 말았다. 추잡스럽게 흘러내리는 눈물은 그를 더럽히고 곧 바닥으로 떨어졌다. 온 세상의 소리가 사라진 것 같은 적막이 그와 나를 감쌌다. 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었으...
후루야 씨는, 생일이 언제에요? 대뜸 떨어진 질문에 후루야가 고개를 들었다. 갑작스레 불러내서 한다는 말이 고작 생일이 언제냐고 묻는 질문뿐이라니. 맹랑한 꼬맹이가 또 공안 사건에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닌지 걱정하던 것이 무색하게 평범한 질문이었다. 대답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것도 하나의 전략일까?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이는 푸른 눈동자를 피해 시선을 커피잔...
평범한 인생이었다. '평범'이라고 말하기엔 굴곡이 많은 인생이었을지 모르나 적어도 내겐 평범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의 나는 평범한 인생을 살던 소시민답게 잘 웃고 잘 떠들었으며, 일상 속 여기저기 널려있는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그의 눈에 띄게 된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지금껏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수없이 죽을 뻔한 순간들을 넘기고 지금껏...
우연이었다. 그와 처음 만나게 된 것은. 그때의 난 이사 온 직후라 마음이 꽤 들떠있었다. 학교와도 가깝고, 지어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새것 같진 않아도 깔끔한 것이 마음에 드는 집이었다. 학교 근처이니 뭐가 특별한 것이 있나 싶겠지만, 들뜬 마음에 그런 것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가볍게 짐 정리를 마친 끝에 밖으로 나오자 불쾌한 흰 연기가 골목에...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발소리가 울렸다. 잔잔하게 퍼지는 피아노 소리와 여기저기서 웃고 떠드는 말소리가 한 데 섞여 적당한 소음을 만들어냈다. 여유롭게 앉아 차를 마시고 있던 남자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주제에 이제와 눈치챈 것처럼 꾸며내는 얼굴이 가증스러웠다. 이제야 왔네. 담담하게 내뱉는 말투와 다르게 나를 훑는 시선이 꽤나 뜨거웠다....
누군가 내게 신이치란 어떤 존재냐고 묻는다면, 나는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 간단하면서도 어려운 질문이었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여전히 나는 그를 살릴 자격이 없는 것이 아닌가하고. 그 언젠가 신이치가 내게 물었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 있다는 걸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후루야 씨라면, 알까 싶어서요.' 어딘가 서글...
숨이 막혔다. 여전히 화면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름이, 내가 아침까지만 해도 불렀던 이름이라는 생각에 몸이 벌벌 떨렸다. 속으로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불렀지만 그에게 닿았는지 알 수 없었다. 평소처럼 눈빛만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맞췄던 나의 사랑스런 연인은 내 곁에 없었다. 내가 이토록 무능력한 인간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
오래된 기억이었다. 꽤나 오랫동안 잠재의식 속에 가둬놓고 두 번 다시 꺼내놓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던 기억이었다. 꿈 속에서 신이치는 슬프게 웃고 있었다. 후루야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너무 슬퍼보여서 나는 손을 뻗었지만 그에게 닿지 못했다. 꽤나 매서운 손길로 내 손을 쳐낸 그의 얼굴은 내가 알던 그 어린 소년처럼 단단한 낯을 ...
답답함에 눈을 떴다. 나를 끌어안은 채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는 신이치의 모습이 보였다. 신이치가 왜 여기에.. 이상한 일이었다. 이미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 어째서 옆에서 자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쩐지 몸도 가벼운 것 같았다. 그와 헤어진 후로 방치되다시피 했던 몸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가 술김에 찾아온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설마하고 ...
하필, 여기서, 저 사람이랑, 단 둘이. 도대체 저 사람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억지였다. 아니야, 괜찮아. 사람들의 틈에 섞이면 들키지 않을 테니까. 아직 후루야 씨는 내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 했다. 통화를 하는 후루야 씨의 모습은 평소와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어딘가 가라앉은 눈빛, 그리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 지...
성인 / DCMK / 비색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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