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바싹 말라오는 입술은 색이 빠져 죽은 듯 보였고, 머릿카락은 제 빛을 잃고 늘어져 있었다. 마티니는 공허한 눈으로 바깥을 응시하다 이내 시가를 입에 물었다. 마치 이 세상과는 관계없는 사람인 듯 앉아있는 마티니는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말라있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계실 작정입니까? 마티니.” “아, 버본이군요.” 사...
꽤 오래전 일이었다. 내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처음 진실을 알았을 땐 불쾌함이 먼저였다. 너는 내게 사실을 알려주지 않을 생각이었겠지만, 알아버리고만 나는 너를 미워할 수 밖에 없었다. 너의 존재가 나를 더 무능하게 만들고, 벼랑 끝으로 몰아 세웠다.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서 돌아설 순 없었다. 처음엔 안타까움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점점 지나 너...
축축하게 젖어드는 입술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던가. 어딘가 낯설지 않은 향이 입술에 닿았다 떨어졌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나는 이 상황을 최대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주위를 훑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온 몸이 저려왔다. 지독하게 끈질긴 사람이었다. 내가 이 곳에 온 지도 벌써 6시간이나 지났음에도 그는 처음과 별로 다를 바 없어...
“처음부터 이럴 생각으로 시작한거죠?” 그는 갑작스런 물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무슨 말이지?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나는 다시금 그에게 물었다.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냐고. 두 번째 물음에는 그 어떤 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못들은 척 입을 열지 않는 그를 따라 나도 입을 다물었다. 곧 해가 저물 시간이었다. - 아무렇지 않은 척 해보려해도, ...
“아직 준비 중이에요?” 서두른다고 했는데도 늦잠을 잔 탓에 나갈 시간이 다 돼서야 겨우 나는 옷을 꿰어 입을 수 있었다. 천천히 해도 돼요-. 그는 자신도 늦을 수 있는 이런 상황에서도 내 기분을 우선시하고, 나를 우선시했다. 아무리 그가 괜찮다고 천천히해도 된다고 말해도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지난 여름, 그가 중요한 약속을 미적거...
재회 “잘 있어, 슈.” “..가는 거야?” 정말 자신을 버리고 갈 거냐며 나를 바라보는 말간 얼굴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가지 않겠다는 말은 않고 저를 보기만 하는 내가 답답했는지 그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직 앳된 얼굴의 선이 고왔다. 금방 올 거야. 내 말에 그가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그게 언젠데.” “슈.” “안 가면 안돼?” 나를 쏘아붙일...
희미한 달빛이 나를 비췄다. 어째선지 저절로 눈이 떠진 나는 이대로 누워있기 보다는 잠깐 걷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어수룩한 새벽은 몹시 추웠다. 제대로 옷을 갖춰입지 않은 것도 있지만, 이건 그것과는 다른, 조금 더 깊은 추위였다. 의식하지 못한 채 나는 어느덧 그의 집 앞에 멈춰섰다. 잠깐 살다 갈 거란 말과 다르게 나의 근처에...
그것은 아주 작은 흠집이었다. 가까이서 봐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만한 크기의 흠집. 그것이 거기에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문득 책을 덮었다. 그와 이야기 하고 싶었다. 며칠 째 그는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홀로 앉아 책을 읽곤 하며 그가 혹시 돌아오지는 않았는지 살피는 일. 그를 찾아가...
그것은 정말 아름다운 날개였다. 아주 검고도 짙은, 새까만 색의 날개는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귀하고, 아름다웠다. 그를 처음 본 순간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 차가운 시선이 곱게 접히며 거짓 미소를 그려 낸 순간, 나는 그가 있는 곳으로 추락했다. 그 순간 나는 직감했다. 그에게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거라고. 그는 마치 ...
혀 끝을 맴도는 지독한 단 맛에 눈가가 찌푸려졌다. 너무 달아. 단 것을 선호하지 않는 나에겐 최악의 디저트였다. 그 보다 최악인 건, 나에게 이 달디 단 디저트를 내민 사람이 당신이란 거겠지. 후루야 레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는 남자에게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디저트가 마음에 안드니? 마치 내가 투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의...
늦은 시간이었다. 갑자기 나를 불러낸 그에게 새삼스레 놀랐다. 한동안 연락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가 뜬금없이 전화를 걸었다. ‘술, 사줄래요?’ 거절할 명분도, 거절하고 싶지도 않았다. 어쩐지 그의 목소리가 슬퍼보여서 나는 순순히 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차피 집에서 한 잔 할 생각이기도 했고, 그가 갑작스레 잠수를 탄 이유도 궁금했다. 그는 내게 꽤나 ...
성인 / DCMK / 비색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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