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날 죽이라고. "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지 못하는 주제에, 벌벌거리는 손을 미처 고정시키지 못한 채 나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내가.. 내가 이럴 줄 몰랐나요, 마티니.. 눈물을 줄줄 흘리며 무릎을 꿇은 채로 나를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애처로웠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이 사람은. 내 기대를 늘 이렇게 충족...
시큼한 맛이 입 안에 가득 들어찼다. 차마 그것들을 뱉어내지도 못한 채 나는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물고 있었다. 누가 들었으면 분명 미련하다고 말할 일들을, 나는 늘 그렇듯 아무렇지 않게 이어 나갔다. 창가에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나는 멍하니 책장을 넘겼다. 몇 번이고 읽었던 추리소설의 내용은 모두 머릿 속에 들어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읽는 것을 멈출 수...
후루야 씨. 후루야 씨. 후루야 씨. 후루야 씨. "후루야 씨-." 아, 결국 또 같은 꿈이었다. 그가 나오는. 반복되는 긴 악몽이었다. 꿈은 꿈에서 끝내야지. 그의 다그침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쿠도 신이치의, 나의 몸을 바라보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익숙해져야 했다. 이 꿈도, 이 몸도, 지금 이 현실도. 나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
- 좋아하고 있어. 그 간절함을 무시한 대가일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하나였다. 이제 좀 덜 귀찮게 됐네. 쓸데없이, 굳이, 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나를 집요하게 쫓아와 하나하나 간섭했던 그가 사라졌을 때는 정말 후련했다. 못된 마음인 건 알지만 그랬다. 나에게도 나름의 사정은 있...
어느 날이었다. 가만히 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멀리서 네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늦은 시간에 등교하는 너를 보면서 나는 시선을 떼지 못했다. 상처투성이 팔, 콧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 너를 향해 내리쬐는 태양. 그 모든 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나는 한동안 그렇게 가만히 너를 바라봤다. 네가 건물로 들어와 내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그 후로도 나의...
“허억.. 헉..!” 겨우 벗어났다 생각했건만, 모두 착각이었나. 오랜 꿈에서 깨자 갑작스런 현실감에 몸이 움칠 떨려왔다. 어째서 꿈에서도나는 그 사람을 잊을 수 없는 건지. 이미 떠나버린 그 사람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쿠도 신이치로 다시 살아간 지 벌써 1년. 그 동안 나는 조금, 어딘가 조금 변한 듯 했다. 정확히 그것이 무엇이...
드디어 잡았다. 오랫동안 골치를 아프게했던 남자를, 드디어 잡은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치밀한 사람이었다. 나를 도발하듯 늘 나와 마주하고 나서야 현장을 떠나던 그의 뒷모습은 나를 지독히도 괴롭혔다. 결국, 오늘 나는 그를 잡고야 말았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허무한 결과였다. 그는 마치 일부러 내게 다가온 것 같았다. 그라...
늘 이맘 때 쯤이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예뻤던 사람. 그래서 자꾸만 보고 싶었던, 보고 있기만 해도 좋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그런 사람. 우연히 지나다가 마주치기라도 하면 서로 고개를 돌리느라 바빴다. 그러면서도 흘끔흘끔 서로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던 시간들이 좋았다. 바라보는 것으로만 만족하자 생각했던 내게 다가와 준 그 사람은...
그런 날이 있다. 항상 지나오던 거리도 특별하게 보이고, 딱히 눈에 띄지 않았던 작은 풀꽃 하나까지도 눈에 들어오는, 어느 날이 있다. 유난히도 눈부시게 햇살이 비추는, 그런 날이 있다.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지만, 나에게만은 특별한, 그런 날이 있다.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네가 유난히도 예뻤던, 그런 날. * * * 어쩐 일일까. 오늘따라 유독 표정이...
나는 너를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 “란 누나‥?” 네가 이렇게 슬픈 얼굴을 할 줄 알았다면, “‥코난이구나.” 네 예쁜 얼굴이 일그러질 줄 알았다면, “거기서 뭐해?” 내가 너를 망쳐버릴 줄 알았다면, “그냥, 생각 중이었어.” 그 날, 그렇게 네가 가버릴 줄 알았다면. 나는 절대 너를 만나지 않았을 텐데. 서늘한 여름 밤, 차가웠던 베란다의 공기. 나는 ...
성인 / DCMK / 비색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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