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를 찾아왔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랜만이에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새삼 그를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들어와. 그를 소파에 앉히고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 그는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내온 찻잔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땐 미안했어요. 조심스럽게 내뱉는 그의 말에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
“..왜 그러는 거야, 응?” 당신은 모른다. 아마, 끝까지 모를 것이다. “코난 군, 대답해줘..” 나를 간절히 바라보는 눈빛을 끝내 모른 척 했다. 내가 아팠던 만큼 당신이 아프길 바랐다. 이 손에 피를 묻혀서라도. “불만이 있으면 말해줘, 고칠게. 내가, 내가 다 잘못했어.. 그러니까, 그러니까 제발.. 말 좀 해줘..” 그를 올려다봤다. 나를 감싸 ...
의문의 편지가 도착했다. 나를 막아달라는, 편지였다. 정확히 내 앞으로 도착한 편지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며 형사님의 능력을 믿겠다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도무지 누가 보냈는 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몇 번이고 편지를 다시 읽었을 즈음 문득, 편지지에 베인 향이 전해졌다. 어딘가에서 맡아본 적있는 진한 블랙베리 향의 향수였다. 흔하지 않...
버본. 나는 이걸 원한 것이 아니었는데. ‘저의 전부를 드리죠.’ 내가 원한 것은, 절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좋아합니다.’ 당신은,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이네요. 정말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봐요. 당신도 나도. “버본-.” 이렇게나마 당신을 안아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지, 아니면 원망해야 할 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고, 나는 그저 이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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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하게 젖어드는 입술에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던가. 어딘가 낯설지 않은 향이 스쳤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무기력한 나는 이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주위를 훑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온 몸이 저려왔다. 지독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그가 나를 가둔 방은 아주 습했다. 지금껏 조...
지친 것 같았다. 몰아치는 사건에 부쩍 수척해진 그의 모습에 괜히 안쓰러워 담배를 문 그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나를 흘끔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평소보다 더 짙었다. “뭐냐.” 퉁명스럽게 내뱉는 목소리에 샐쭉 웃고 말았다. 그냥요. 내 말에 그가 싱겁다는 듯 웃었다. 담배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자 그가 왜, 한 대 줄까? 하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헤어져요. 귓가에 계속 메아리쳤다. 그럴 거란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은 몰랐다. 아니, 몰랐던가. 나는 자조했다. 괜히 성냥갑을 만지작거리다 이내 탁자 위에 던졌다. 곧 나갈 시간이었다. 그가 없는 일상은 놀라울만치 평온했다. 어쩌면 당연한걸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한 시간보다 떨어져있던 시간이 더 길었으니까. 그래서 그가 그런 말을 했던 거겠...
어설픈 설렘이 내게 있었나보다. 나도 알지 못했던, 그런 어설픈 설렘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었다. 이미 끝나버린 관계에 남은 미련이라니. 나와 그의 관계는 끝났는데 아는지 모르는지 내 심장은 계속 뛰고있었다. 다신 만날 수 없는, 그를 위해서. 나는 더 이상 에도가와 코난이 아니다. 그러니, 나는 이제 그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결코 가...
“고로, 밥 먹자-.” “먀아-.” 다리를 부비는 고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준 에리가 고로 전용 그릇에 사료를 담았다. 밥을 먹던 고로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에리의 책상에 올라가더니 끝에 걸쳐저 있던 액자 하나를 밀어 떨어뜨렸다. “어머, 고로-!” “먀-!” 액자를 떨어뜨려놓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고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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